제주 제주시에 있는 '듀포레'. 처음엔 그냥 예쁘다고 소문난 카페인 줄만 알았다. 요즘 워낙 감성 카페가 많기도 하니까. 그런데 딱 한 발, 정말 한 발만 안으로 들여놓으면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다. 여긴 카페가 아니다. 말 그대로 현실 도피 장소다. 잠시 일상을 멈추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그런 곳. 시간이 멈추는 기분이다.
차 문을 닫고, 조용히 입구에 다가섰을 때부터 이미 이 공간은 다른 세상이다. 차가운 공기 대신 부드러운 바람이 스쳐가고, 바다 냄새와 고소한 빵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그 순간 머리가 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이 길 맞나?’, ‘주차 여기 해도 되나?’ 하며 긴장했던 내가, 어느새 눈빛이 말랑해지고 있었다.
이 공간의 진심은 유리다. 정확히 말하면, 이 카페의 절반은 통유리다. 아니, 절반 이상일 수도 있다. 벽 대신 유리창이 둘러싸고 있어서 어디를 앉아도 시야에 바다가 들어온다. 게다가 그 바다를 통과해서 들어오는 햇살이 실내를 감싸 안는데, 그 빛이 너무 따뜻하고 포근해서, 나도 모르게 정신이 스르르 놓이더라. 인테리어는 말끔하고 세련됐지만, 너무 말끔하면 또 불편하잖아? 근데 여긴 참 묘하게 따뜻하다. 차가움과 감성 사이의 그 오묘한 균형이 아주 잘 잡혀 있다. 따뜻하 기분까지 든다.
그리고 테라스. 정말 말해 뭐해다. 거기 앉아 있으면 내가 무슨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누가 사진 찍어주지도 않았는데, 그냥 그 공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림이 된다. 옆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겠고, 대화도 필요 없다. 파도 소리에 귀를 맡기고, 바람 따라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다가, 커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멍. 이런 패턴이 반복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어느새 마음이 따라간다.
내가 마신 건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로즈마리 그린에이드'라는 이름부터 감성 넘치는 초록색 음료였는데, 와… 진짜 이건 비주얼이 다 했다. 거품 위에 로즈마리 한 가닥이 살짝 올라가 있고, 컵 안의 탄산이랑 얼음이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제주 바다랑 어울리기 이토록 좋은 음료가 있을까 싶었다. 마시기 전에 사진은 기본이고, 마시면서도 계속 눈이 간다. 맛도 상큼하고 깔끔해서, 기분까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혼자 앉아 있으면 괜히 깊은 고민 하나쯤 꺼내보고 싶어진다. “나 요즘 뭔가 좀 지친 것 같아.” 같은 말이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흘러나올 것만 같다. 감성이 그냥 자동으로 켜지는 공간이다. 이상하게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려주는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일까, 옆자리 사람들도 다 조용하다. 말 없이 창밖을 보거나, 책을 펼치거나, 혹은 나처럼 그냥 멍을 때리고 있다. 이곳에선 그게 너무나 자연스럽다. 인생을 다시 되돌아 볼 수 있는 장소다.
그러다 어느새 노을이 시작된다. 그 순간이 진짜 마법이다. 저 멀리 바다에 해가 천천히 내려앉으면서 하늘이 분홍빛, 주황빛, 보랏빛으로 물들어간다. 그걸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묘하게 벅차오른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있는 그 시간이 이렇게 힐링이 될 줄 몰랐다. 같이 간 친구도 핸드폰을 내려놓고 말없이 노을을 바라봤다. 서로 말없이 앉아 있었지만, 그 시간은 가장 가까이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여긴 빵도 괜찮다. 그냥 곁다리가 아니다. 본격적으로 먹으러 와도 될 만큼, 빵이 꽤 진심이다. 지나가면서 봤던 크루아상, 브리오슈, 스콘들이 진짜 퀄리티가 느껴졌다. 나는 이미 배가 불러서 패스했지만, 다음엔 꼭 공복에 와서 빵 투어만 따로 해보고 싶다. 커피와 빵, 그리고 풍경. 이 삼박자가 이렇게 조화롭게 어울리는 곳, 생각보다 흔치 않다. 내가 찾은 보물 장소이다.
공간도 곳곳이 다 포토존이다. 내부 좌석 배치도 여유롭고, 의자 하나하나, 조명 하나하나 다 감성이다. 통유리 앞 좌석은 기본이고, 옆쪽 조용한 공간은 마치 개인 서재처럼 아늑하다. 혼자 오든, 연인이 오든, 가족이 와도 모두가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구조. 어떤 각도로 사진을 찍어도 배경이 예쁘게 나온다.
이 공간의 진짜 매력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에 있다. 뭔가를 꼭 해야 할 것 같은 강박도 없고, 사진을 꼭 찍어야 할 것 같은 압박도 없다. 그냥 그저 있는 그대로 머물러도 괜찮은 곳. 바쁘게 살던 일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잠깐 멈춰 서는 그 여유. 캔버스 듀포레는 그런 시간을 허락해주는 공간이다.
한참 앉아 있다가 나올 때쯤엔, 머릿속이 조금 정리되어 있다. 뭐 대단한 해결책이 떠오른 건 아니지만, 적어도 마음 한 켠이 편안해졌다. 그런 데 있잖아. 그냥 거기 다녀왔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 나한테는 이곳이 그랬다. 제주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고맙고, 다시 갈 수 있다는 게 더 고맙다. 다음에 또 방문 할 예정이다.